ADHD 및 자폐 비약물 치료 경험

힘든 엄마가 되는 길의 시작

거북이 맘 2023. 12. 13. 15:41
"지적장애 아동으로 등록이 되면 학교나 사회에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하지만 난 등록을 하지 않았다. 그 이유는 다른 모든 부모들과도 생각이 같을 것이다. 혹시 우리 아이가 나중에 장애아라고 불리게 될까 봐 너무나 두려웠다.

그래서 특수반에 보내지 않
았다 그리고 장애아가 아닌 척하고 살아가기로 했다. 나는 장애라는 단어를 우리 아이에게 쓰고 싶지 않았다. 그래서 철저히 숨겼고 내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난 힘들었다."

 

2006년 3월 14일, 아침 10:30분에 산부인과에 약속이 있었다. 산부인과를 거의 2주에 한 번씩 다녔다. 왜냐하면 일 년 전에 한번 유산을 경험했기 때문이었다. 나의 몸도 다른 사람에 비해 많이 약했다. 임신 기간 동안 입덧도 심하고 아랫배는 항상 단단했다.

 

그래서인지 그날도 초음파 검사를 했다 그런데 태아가 움직이지를 않아서 검사를 할 수가 없었다. 할 수 없이 오렌지 주스를 마시고 한 10여 분 복도를 거닐다가 다시 검사를 받았다. 그제야 조금 움직이기 시작했다. 임신 기간 내내 빠른 움직임은 없었던 것 같다. 천천히 부드럽게 움직였다.

 

드디어 2006년 산달... 애정 일은 아직 2주 정도 남았다. 아침부터 배가 아팠다. 남편에게 전화를 걸어 병원에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병원 갈 준비를 마치고 출근하던 남편이 도착하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급히 병원으로 향했다. 응급실 병원 침대에 누워 검사를 하는데 태아가 좀 이상하단다. 일주일 전 검사까지 괜찮았던 태아가 이상하단다. 심장 박동이 잡히지를 않는다는 청천벽력 같은 말을 한다. 비상상황인 분위기.... 급히 초음파 장비를 가져온다 그리고 자세히 다시 검사한다.

OMG.. 보통 아이가 물구나무 하듯이 나올 준비를 해야 하는데.. 자기만 편하게 다시 원래 자리에 그대로 있다. 산통은 초반을 넘어가고 있는데 아이는 나올 준비를 안 하고 있었다. 의사의 지시에 따라 바로 제왕절개 출산으로 결정되었다. 최대한 빨리 수술 준비를 마치고 수술실로 옮겨졌다. 그곳에는 여러 명의 간호사분들과 의사분들이 있었다.

그 수술실의 차갑고 썰렁한 기운에 너무 겁이 났지만 다행히도 간호사분들은 너무 따뜻하게 대해 주었다. 잠시 후 간호사분들의 도움으로 허리를 앞으로 숙이고 침대에 걸쳐 앉게 되었다. 그리고 척추뼈가 시리고 저리는 느낌이 났다. 주삿바늘이 척추뼈에 닿는 느낌과 함께 엄청난 고통이 전해져 왔다.

 

그 고통에 나도 모르게 소리를 질렀다. 마취주사를 놓던 의사가 급히 바늘을 빼었고 다른 의사가 다시 마취를 하였다. 그래서 그랬을까.. 아직도 비가 올 때면 주사 맞은 부분이 저리곤 한다. 약간의 시간이 흐른 후 나는 가슴 아래 하반신의 모든 감각을 잃었고 수술이 시작되었다. 내 배가 열린 것을 느꼈고 의사와 간호사의 손길들을 느꼈다.

 

그리고 무언가 뜨거운 물체가 내 몸에서 빠져나감을 느꼈다. 모든 것이 빠져나간 후남편과 함께 간호사 손에 안긴 아이를 보여 주었다. 나도 모르게 눈물이 났다. 솔직히 내 눈에는 너무 이쁘게 보였다. 그렇게 그날 제왕절개로 첫째를 낳았다.

그리고 시작된 떨림과 추위.. 정말 허리가 끊어질듯한 오한이 찾아왔다. 간호사분들이 계속 온장고에서 따뜻하게 데워진 담요를 가져다주었다. 힘든 날이었다. 하지만 그날 느꼈던 고통의 기억은 전부 잊혔고 지금은 행복한 기억만이 남아있다. 나의 기억 속에 남아있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행복한 날이었다.